[재미있는 性이야기] 나폴레옹과 스타킹 페티시

 

20세기 인류사의 상징인 '코카콜라'가 여인의 각선미를 본 따 병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흔히 남자의 심볼을 가운뎃다리라고 하는 말처럼 다리는 심볼을 상징한다. 그래서 스타킹은 매혹과 섹슈얼리티의 상징이었다.기원전 로마시대 다리에 붕대처럼 감았던 '각반'에서 유래된 스타킹은 추위를 막기 위한 방한용으로 사용되었으며, 16세기 피렌체 궁정의 여인들이 발전시켰고 18세기에 이르러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개량되었다. 그러나 한 켤레에 120만원이 넘는 고가품이었다.

 

역사상 스타킹 광은 나폴레옹의 부인이었던 조세핀인데 하얀 실크 스타킹만 108켤레였다고 한다. 이는 성 편집증 증세를 지녔던 나폴레옹 때문이었다. 성기능 장애를 갖고 있던 나폴레옹을 자극하기 위해 조세핀은 스타킹 광이 되었고, 속에 아무 것도 입지 않은 채 스타킹이 흘러내렸다며 옷을 들추는 행위로 나폴레옹의 편집증을 만족시켜 주거나 유혹을 했던 것이다.

 

나폴레옹은 성적으로 여러가지 장애를 보여주었는데, 그 중에는 작은 키로 인한 콤플렉스도 있었다. 즉,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작은 키를 업신여길까봐 더욱 전투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으나, 신체적 결함만은 어쩔 수 없었던지라 육체접촉이 없는 성적 쾌감을 추구했던 것이다.

 

이처럼 직접적인 성행위보다 여성의 속옷이나 특정한 행위에 성적 쾌감을 느끼는 것도 성기능 장애의 하나이다. 더불어 정신적 장애에 속하는데, 우리나라도 이러한 환자들이 늘어나고 있어 문제이다.


일본에서 사회 문제화되었던 여성속옷(주로 10대 소녀들이 입었던 팬티나란제리) 판매가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인터넷을 통해 등장했다고 한다. 날로 범람하는 관음증이 이러한 상태까지 이르게 한 것이라고 판단된다.

성은 건강한 것이다, 쾌락만이 목적이 아니라 자손을 번성시키고 진실한 사랑의 행위이다. 따라서 정신적으로 이상 증세가 있다면 속히 전문의의 상담을 받아야 할 것이다.

작성자:퍼스트 비뇨기과 김재영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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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애통신 | 2008/10/22 10:35 | yonae.com | 트랙백 | 덧글(0)

[여우열전] 고혹적인 흡혈녀, 케이트 베킨세일

 

1973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케이트 베킨세일(Kate Beckinsale)은 우리 나라에서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영화 언더월드 I, II(Evolution)로 검은 라텍스 복장의 잘 빠진 S라인을 뽐내면서 매력적인 섹시한 흡혈녀 이미지가 굳어진 듯하다. 특히 [언더월드 에볼루션 Underworld: Evolution, 2006]에서는 전편에서 볼 수 없었던, 상대역인 스코트 스피드먼과의 러브신에서 눈부신 전라를 노출하고야 만다. 그래서 2편이 더 재밌는 것 같다.

허나 보여줄라면 좀 더 완벽하게나 보여줄 것이지 그 허연 살결은 충분히 보았으되 결정적 뽀인트인 유두나 슴가노출은 거의 교묘한 카메라 워크로 얼렁뚱땅 넘어가버리고 말았으니... 본 안습맨을 비롯한 많은 결정적 노출씬 매니아들의 한탄이 하늘을 찌를 듯하다. 우리는 본시 작품을 위하여 몸을 아끼지 않고 보여주시는 그런 여배우들을 숭배하니 케이트 베킨세일은 그런 면에서는 매우 아쉬운 배우라 하겠다.

[언더월드 에볼루션] 중에서
케이블에선 잘린 장면이다.

 

안습맨이 처음으로 기억하는 케이트 베킨세일은 심심한 연애무비 [세렌디피티 Serendipity, 2001]에서였다. 지금은 내용도 기억 안 나는 이 영화에서 나는 여주인공인 케이트보다는 오히려 남자주인공인 존 쿠작에게 더 관심이 있었다. 뭐 성적으로 관심이있었다기 보다는 당시는 존 쿠작이란 배우에 관심을 두고 있던 터라... 아무튼지 별로 썩 내키지않는 외모와 인상의 여주인공 케이트 베킨세일은 그냥 눈 밖이었고, 벨로 맘에 들지 않는 캐스팅이었다.

 

다음에 그녀를 만난 것은 [진주만 Pearl Harbor, 2001]에서였는데, 아무리 블록버스터급이라하나 연애무비의 범주를 벗어날 수는 없는지라... 그닥 그녀는 썩 어울리는 캐릭터가 되지 못했다. 본래 케이트의 배역은 남 아프리카산 백인 여배우 샤를리즈 테론(Charlize Theron)에게 먼저 갔던 것이었는데, 그녀가 키아누 리브스(Keanu Reeves)와의 [스윗노벰버 Sweet November, 2001]를 찍느라 케이트에게 간 것이라고 한다.

 

그녀는 뭔가 씩씩한 전사 이미지가 걸맞는다.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암튼지 적어도 내게는 [진주만]이나 [세렌디피티]나 별로 인상적이지 못한 배역이었는데, 그녀의 퍽이나 어울리는 모습은 바로 [언더월드 Underworld, 2003]였다. 앞서도 말했지만 바디라인이 드러나는 타이트한 검은 라텍스 수트에서 느껴지는 섹시함과 그녀의 검은 머리와 깊은 두 눈은 정말이지 딱 들어맞는 배역이었다. 그리고 나서 비슷한 콘셉트이지만, 영화 [반 헬싱 Van Helsing, 2004]에서는 반대로 흡혈귀를 퇴치하는 안나 공주로 나오는 케이트 역시 그럴 듯하게 어울렸다. 왠지 그녀는 현실적인 현대물보다는 허황되지만 중세 판타지 물에서 더욱 진가가 발휘되는 외모를 지닌 것 같다. 이후 [언더월드 에볼루션]에 이어 출연을 하지만, 프리퀄에 해당하는 [언더월드 Underworld: Rise of the Lycans, 2009]에서는 케이트의 모습을 볼 수 없다 하니 아쉽기 한량이 없다.

 

이런 사진은 좀 아니지 않는가?
왜 찍은 것인가?

 

아무튼지 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따오기 마냥 잘 안 보여주는 케이트는 앞서 말했듯이 영국 런던 출신이다. 왠지 호감이 가는 동경이 되는 세계적인 도시 런던, 게다가 역시 세계적인 명문 옥스퍼드에서 프랑스와 러시아 문학을 전공했다고 하니 흔히 말하는 ‘학벌’이 되는 여배우다. 하지만 연기를 하느라고 졸업을 못했다고 하니 결국 공부엔 취미가 없었나보다. 그녀의 부모 모두가 배우인데, 희극인이었던 아버지는 그녀가 6살 때인 32세에 생을 다했다. 그녀의 배다른 언니인 사만다 베킨세일(Samantha Beckinsale)도 배우로 활동하고 있으니 연예인 가족이 되겠다.

 

그리고 또 케이트에게는 릴리 모 쉰(Lily Mo Sheen)이라는 9살짜리 딸이 있는데, 이 아이는 정식 결혼을 하지 않은 영국배우 마이클 쉰(Michael Sheen)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다. 이 아이는 [언더월드]에서 어린 시절의 케이트 배역을 연기함으로 영화계에 데뷔를 했으며, 케이트는 이 영화의 감독과 결혼을 했으니 케이트를 둘러싼 가족관 계의 사람들은 모두 영화인인 셈이다. 또 재밌는 사실은 애인이었던 아이의 아빠 마이클 쉰도 [언더월드]에 출연을 했다는 사실이다. 

 

 

묘한 뱀파이어적인 매력을 지닌 케이트 베킨세일은,

 

2002년 영국 헬로 매거진에서 뽑은 미인 No.1

2002년 스터프 매거진이 선정한 세계의 섹시한 여자 102 중 63위

2003년 맥심 매거진 선정 Hot 100 중 23위

2005년 FHM이 선정한 세계의 섹시한 여자 100 중 71위

2006년 FHM이 선정한 세계의 섹시한 여자 100 중 78위

2007년 맥심 매거진 선정 Hot 100 중 21위

 

등을 차지했다.

 

 

여간해서는 보여주지 않는 배우 케이트 베킨세일... 하지만 그녀도 소시적 신인시절에는 어쩔 수 없었나보다. 본 안습맨 안구에 점안액 넣어가며 인터넷을 뒤져 본 결과 풋풋한 그녀의 슴가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가 있었다. 아아... 정말 눈물 나는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럼 본 꼭지의 본래 목적이자 의도인 그녀의 노출 화면을 감상하시면서 벌어먹느라 눈물 났던 하루를 위로하기 바란다.


* 편집자 주> 운영했던 블로그가 음란자료-_-;; 유포로 짤린 이후 간이 좁쌀만해 진 본 주인장을 용서하길 바라며, 굳이 케이트 언냐의 따끈한 노출자료가 보고싶거들랑 기사 본문 보러가기를 클릭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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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애통신 | 2008/10/21 09:54 | yonae.com | 트랙백 | 덧글(0)

아무도 모른다. [블루버닝의 S다이어리 시즌 2]

사람들은 말했다. 이번에는 정말 충격이라고. 그럴 줄 몰랐다고. 거짓말인 줄 알았다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처음 그 소식을 접했을 때 나는 뭔가 착오가 있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었다.

 

요즘은 연예인을 좋아하면 어떤 방식으로 그 연예인에 대한 사랑을 키우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 그 사랑도 인터넷을 통해서 하겠지. 그렇지만 내가 한참 연예인을 좋아하던 학창시절에는 인터넷이 없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번. 스타의 사진을 파는 가게에 가서 새로운 사진이 나온 게 있는지 체크하고 한 장에 150원 정도를 주고 샀던 것이 전부였다. 중학생이었던 내가 가장 많이 샀던 사진은 최진실의 사진이었다. 그녀는 어찌나 상큼하고 깜찍하던지. 최진실의 엄청난 팬 이어서라기보다 그녀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졌기 때문에 나는 사진을 사곤 했었다.

 

후레쉬 ** 라는 빵 형태의 과자가 있었더랬다. (물론 이 과자는 지금도 팔리고 있다.) 그리고 ** 비안코 라는 아이스크림이 있었고 가* 초컬렛이 있었다. 과자에 대한 특별한 취향이 없었던 나는 상큼하고 깜찍한 그녀가 광고하던 저 과자들을 참 많이도 사 먹었었다. 그리고 언젠가 모 프로그램에 나와서 그녀가 어릴 때 징그럽게 먹었지만 아직도 맛있어서 자주 해 먹는다고 말하던 수제비를 그녀처럼 김치를 총총 썰어 넣고 간혹 야식으로 끓여먹곤 했었다.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어차피 사생활이 낱낱이 공개되는 걸 피할 수 없긴 하지만 최진실의 경우에는 마치 옆집 처녀의 일처럼 온 국민이 그녀의 사생활에 관심을 가졌었다. 지지리도 가난하고 편모슬하에 크던 그녀는 어느 날 여자는 남자하기 나름이라는 광고 한편으로 신데렐라가 되었다. 사람들은 그녀가 화려한 스타가 되었음에도 어려운 시절을 잊지 않고 여전히 알뜰하고 악착같은 또순이가 되길 바랬다. 실제 그녀의 생활이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녀는 여느 톱스타와 달리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그런 그녀의 사생활이 사람들의 입에 좋지 않게 오르내리기 시작했던 것은 이혼 이후부터였다. 갖가지 지저분한 루머가 돌았고 그 사이에 그녀는 국민들에게 남편 조성민에게 맞아서 멍든 얼굴과 살림살이들이 박살이 난 집안을 공개해야 했다. 그때 엄마가 한 말이 생각난다. 쟤가 돈은 많이 벌고 인기는 있는지 모르겠지만 여자 팔자로는 참 더러운 팔자라고. 여자로서 저런 모습을 대체 누가 전 국민에게 다 보여주고 싶겠냐고. 

 

그녀가 왜 죽었는지에 대해 사람들은 참 말이 많다. 루머의 최대 발생지이자 유포지인 증권가에서는 사채설이 떠돌았고, 그녀는 그 일에 무척 충격을 받았었다고 한다. 그런데 참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그녀가 자살을 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타살이 분명하다고 얘기하고 싶은 게 아니다. 단지 그녀가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녀가 죽고 싶은 순간은 한 두 번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녀를 키워준 매니저가 죽었을 때도 또 이혼을 하고 아이들을 혼자 키우면서 아마 그녀는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 보다 훨씬 더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그 순간들을 잘 견뎌왔다. 그리고 마침내 재기에도 성공했다. 그녀는 톱의 자리에 있다가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지만 얼마 전 드라마의 성공으로 다시 재기에 성공했다. 한번 올라갔다가 내려온 사람이 다시 그 자리로 가기란 거의 불가능한 연예계에서 그녀의 성공은 신화에 가까웠다. 그런데 그녀가 왜 죽었을까? 이제 힘든 일은 거의 다 끝이 나고 남은 건 아이들과 함께 행복하게 잘 사는 일만 남아있을 것 같았던 그녀가 왜 죽었을까?

 

사람들은 시간이 오래 지나면 기억도 상처도 희미해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시간과 무관하게 그 일을 겪었을 당시에 비해 조금도 가벼워지지 않은 짐을 지고 살기도 한다. 그리고 어쩌면 최진실은 우리가 끝났다고 믿은 바로 그 시점에서 실은 하나도 끝이 나지 않은 일들을 계속 안고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는 것은 진실의 아주 작은 단면일 뿐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이해하거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모를 때가 많다. 그 사람이 되어서 그 상황을 겪어보지 않는 한 그 무게는 아무도 짐작할 수 없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에게 마음을 독하게 먹으라 던지 훌훌 털고 일어나라는 따위의 소리를 하는 건 그 때문인지 모른다.

 

얼마 전 일이 동시에 두 가지나 엎어진 적이 있었다. 하나는 2개월이나 진행 중인 상황이었고 다른 하나는 계약서에 도장 찍는 일만 남은 프로젝트였다. 한꺼번에 두 가지 일이 사라지자 나는 거의 공항상태에 빠질 지경이었다. 프리랜서에게 일이 떨어져 나간다는 것은 곧 밥벌이의 힘겨움을 의미한다. 거기다 추가로 이제는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는 불안감까지. 정말이지 아침에 해가 뜨는 게 괴로웠다.

 

 

 

괴로운 심정을 달래기 위해서 나는 나름 친하다는 친구. 또 같은 일을 하는 지인들을 만나서 위로를 받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서 어떤 위로도 받지 못했다. 모두들 내게 까짓 눈 딱 감고 잊으라던가 아니면 이럴 때 일수록 내 커리어를 쌓기 위해 더욱 노력하라는 말만 했었다. 물론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위로는 맞는 말을 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어쩌면 내 잘못인지도 모른다. 천성이 원래 징징대는 타입인 나는 그런 내 꼬락서니가 하도 보기가 싫어서 언제부터인가 무지하게 강한 척을 하기 시작했다. 뭐든 이기려고 했었고 누가 나를 위로할 일 같은 건 만들지 않았다. 하지만 정말로 위로가 필요한 순간에 나는 내가 그 동안 만들어놓은 내 탈 안에 갇혀 어떤 구원도 받을 수가 없었다. 사람이 외로워도 죽을 수 있구나 싶을 정도로 정말 지독스럽게 외로웠다.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긴 나도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그 일에 왜 그렇게 길게 충격을 받고 힘들어하는지를 말이다.

 

2개월 사이에 몸무게가 6kg이 늘었다. 원래 먹성이 좋긴 했지만 활동량이 많아서 그 동안 살이라고는 안 쪄 보고 살았는데 어느 날 방송을 하러 가려고 옷장을 열었더니 맞는 옷이 없었다. 어쩌자고 나는 그 동안 그렇게나 몸에 꼭 맞는 옷들만 샀을까? 내 자신은 몸무게 하나 조차 변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던 걸까? 겨우 일 두 개 엎어지고 두 달이나 두문불출 할 정도로 허술한 마음을 가진 주제에.

 

오늘은 2개월 만에 처음으로 커튼을 열었다. 그 동안 내 집에는 빛 한 조각도 들어오질 않았었다. 밤인지 낮인지도 모르고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잤다. 코앞에 다가온 마감들만 겨우겨우 쳐냈을 뿐. 그저 내가 즐거워서 글을 쓰는 일 같은 건 사라졌었다. 추리닝을 입고 운동화를 신고 한강 둔치를 오랫동안 걸었다. 사람들은 나만 빼고 다들 정말로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누군가가 우울하건 말건, 또 누군가가 죽건 말건.

 

물론 나도 알고 있다. 내 상황을 해결 할 사람은 나 밖에는 없다. 아무도 나에게 사라진 일을 줄 수도 없고, 그 일로 인해 죽은 것처럼 산 시간을 돌려줄 수도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나는 절대 자살 같은 건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오랜 휴식이 얼마나 갈지 모르겠지만 휴식 끝에는 분명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는 것.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딱 한 가지 일이다.

 

그녀의 미소를 기억합니다...

 

 

 작성자:연애통신 칼럼니스트 블루버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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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애통신 | 2008/10/14 09:23 | yonae.com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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